2년 전(2023) 페르소나 5 더 로열(이하 로열)을 마친 후 여운이 가시기 전에 후속작인 페르소나 5 스크램블 더 팬텀 스트라이커즈(이하 스크램블)를 시작했지만 여러 면에서 로열보다 부족함을 느껴 드문드문 플레이하다 얼마 전에야 엔딩을 봤다.
플레이 타임은 약 36시간으로 120시간을 즐긴 로열의 1/3도 안 되는데, 그만큼 볼륨 차이가 크고 게임 방식도 상이해 후속작보다는 외전으로 보는 게 합당할 것 같다.
스크램블에서 가장 불만이었던 건 그래픽과 전투 시스템이었는데, 로열의 그래픽도 동시대 게임들과 비교하면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퀄리티를 디자인으로 커버하는 형태였지만 스크램블은 그보다도 못한 그래픽을 보여준다.
이는 무쌍 시리즈로 유명한 코에이 테크모의 오메가 포스와 공동 제작하며 그들의 카타나 엔진을 사용한 결과인데, 저질 텍스쳐는 그렇다 쳐도 가장 중요한 캐릭터들에 자글자글한 계단 현상이 심각해서 2020년에 출시된 게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PS5 기준)
그나마 장점인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의 UI도 어딘가 모르게 로열에 비해 촌스러운 느낌.
잘 알려졌듯이 스크램블은 기존 턴제에서 무쌍식 버튼 연타를 통한 액션으로 전투 방식이 변경되었는데, 이게 또 영 별로다.
종잇장을 베는 듯한 가벼운 타격감과 정신 사나운 모션, 거지 같은 카메라워크 등이 한데 모여 전투가 정말 재미없다.
그래도 페르소나의 아이덴티티는 살려야 하니 페르소나별 속성 스킬과 기습 등을 넣어놨는데, 오히려 이게 전투 중간중간 맥을 끊기게 만들어서 무쌍류의 장점인 호쾌함마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전투는 재미없는데 몹들 피통은 크니 지루하고 답답해져서 결국 도중에 난이도를 이지로 낮춰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다.
게임할 때 항상 기본 난이도인 노말로 플레이하고 난이도를 올리면 올렸지 내리는 일은 거의 없는데 전투가 너무 재미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시간을 들여 끝까지 플레이한 건 좋았던 점도 있었기 때문인데, 사실 로열을 플레이하며 괴도단을 비롯한 캐릭터들에 애정이 생겨서 그들의 이후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제작진도 아마 이걸 노리고 스크램블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미 로열에서 완성된 팀이기 때문에 캐릭터 간 갈등도 없고 커뮤니티에 대한 고민도 없이 정말 여름방학을 맞아 전국을 여행하는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스크램블은 페르소나 5나 로열을 이미 플레이한 유저들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팬 서비스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다르게 말하면 전작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추천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AI나 트라우마 등을 소재로 한 스크램블의 스토리는 괜찮은 편이지만 팰리스-제일 등 페르소나 5에서 이미 다뤘던 것들을 약간 변형해 재사용하는 것들이 많아 참신한 맛이 부족하고 후반부에는 티 나는 흑막을 비롯해 페르소나 특유의 중2병스러운 부분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신규 캐릭터인 소피아와 젠키치의 서사도 좋았고 억지스러운 반전이나 남겨 둔 떡밥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페르소나 5의 후일담으로 충분히 훌륭하다.
이제 40시간째 진행 중이던 페르소나 3 리로드를 마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