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태권브이 하나 정도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왔는데 막상 사려고 보면 시중에 나와있는 적당한 제품이 없었다.
자칭 한국을 대표한다는 로봇의 위상이 무색할 정도로 적당한 기성품이 없었고 몇몇 고가의 특별판이나 수제품 등만 근근이 나왔을 뿐이었다. 태권브이가 나온 지 무려 40년이 다되도록 말이다.
이는 애당초 마징가의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태권브이의 태생적 한계와 복잡한 저작권 그리고 열악한 국내 프라모델, 피규어 제작 환경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이 포스팅은 제품 구입기인만큼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도록 하겠다.
2014.07 - 주문
이 제품을 알게 된 것은 작년(2014) 7월로 노메이크 스튜디오라는 신생 업체에서 제작한 것이다.
괜찮은 조형에 선호하는 사이즈(약 15cm), 적당한 가격(프리오더 당시 65,000원)등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 주문했다.
크롬버전이나 타락버전등 몇 가지 배리에이션이 있었고 난 일반버전을 주문, 이때가 7월 말이었고 발송 예정일은 9월이었다.
즉 두 달 후면 제품을 받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014.08 - 1차 연기
8월 말쯤 공지가 올라왔는데 발송을 10월 말로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중국 공장과의 트러블. 뭐 신생업체의 첫 제품이고하니 경험 부족에서 오는 시행착오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일정 연기에 대한 사과 및 보상으로 프리오더 참여자들에게 미니 스탠드(7천원 상당)를 증정하겠다고 했다.
뭐 한 달 더 기다리고 스탠드 받으면 나쁠 거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4.10 - 2차 연기
다시 한 달 여가 흐르고 10월 중순쯤 일정 공지가 올라왔다.
내용은 무려 10월에서 내년(2015) 2월로 다시 연기한다는 것. 이때 살짝 멘붕이 왔다.
사실 추가로 한두 달 더 연기될지도 모르겠다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설마 4개월씩이나 다시 연기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좀 황당하기까지 했다.
연기사유는 마찬가지로 중국공장과의 문제로 중국놈들이 일정 약속을 안 지키고 개판 친다는 것.
그 외에 재질이 PVC에서 ABS로 변경되고 그로 인한 볼트 구멍 처리 등 개선작업을 계속하느라 일정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했다.
공지 내용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아마추어적인 모습이었다.
그 정도도 예상을 못하고 미리 돈 받고 물건을 팔았단 말인가?
이 시점에서 알게 된 것이 노메이크란 회사가 원형사 출신의 개인이 만든 거의 모든 걸 혼자 처리하는 아주 작은 업체라는 것이었다.
이런 배경을 알게 되니 어느 정도 이해도 되고 응원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짜증은 났지만 다시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때 열받거나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환불을 받았다.
판매자는 내년 2월로 연기한 것은 또다시 연기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여유 있게 잡은 마지막 연기라고 하였다.
진행이 순조로우면 그전에 발송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언급도 있었다.
즉 아무리 오래 걸려도 절대 2월은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5.02 - 3차 연기
해가 지나고 드디어 2015년. 설마 했지만 조기발송은 이뤄지지 않았고 약속의 2월이 되었다.
그리고 올라온 공지는.. 또다시 연기한다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엔 아예 일정조차 없었다는 것.
날짜를 지정했다 또 못 지킬지 모르니 그냥 '몇 주' 정도 더 걸릴 거라는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계속된 연기에 스스로 위축되어 날짜 언급을 피하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돈이 오가는 상거래에서 이건 잘못된 대처였다.
그 '몇 주'가 1주가 될 수도 5주가 될 수도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미 돈을 지불하고 기다리는 사람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언제 받을지 모른다는 얘기이니 답답할 수밖에.
그것도 이미 반년이상을 기다려온 사람들에게 말이다.
이 시점에서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환불을 받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솔직히 이 정도 상황이면 환불이 문제가 아니라 쌍욕을 하며 소란 피우는 사람이 한두 명은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생각보다 점잖은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 사태에 대해 몇몇 항의하거나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정중했다.
아무래도 태권브이의 구매자들이 나이들도 좀 있고 순박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나의 예상이 맞은 것 같다.
비록 어이없이 발매는 미뤄지고 있었지만 판매자의 사과는 진실되어 보였으며 모든 것이 더 나은 완성도를 위함이라는 말에, 무엇보다 지금까지 기다린 게 억울해서라도 참고 더 기다리기로 했다.
2015.03
약속했던 몇 주가 지나고 3월 말에 제품을 발송할 예정이라는 공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결국 3월 중에도 태권브이는 발송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불만이었던 건 기다리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연기되는 구체적인 사유나 진행상황을 제때 알려주길 원하는데 판매자가 그걸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기약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상태.
2015.04
다시 올라온 공지에서도 뭐라 뭐라 길게 써놨지만 정작 구매자들이 원하는 '그래서 언제 오는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중국에서 국내에 들여오면 바로 발송할 예정이지만 국내에 언제 들어올진 모른다는 그런 웃긴 내용들.
포장과 검수만이 남았지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는 식이었다.
이 시점에서 구매자들 몇몇은 몸에 사리가 생겼을 것으로 예상.
많은 사람들이 제발 어린이날 전까지는 받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2015.05초 - 발송
드디어! 드디어 제품을 발송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하지만..
일반버전 헤드 도색에 문제가 발견되어 교체하느라 타락버전부터 발송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발송을 시작한다는 것이 어디인가.
예약구매자들은 환호했으나 그것도 잠시.. 바로 '순차적 발송'이란 최후의 관문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노메이크 대표인 판매자 본인이 직접 제품의 포장부터 택배 발송까지 '혼자'서 다 하기 때문에 하루 발송 물량이 고작 10~20대였던 것.
예약구매자들은 매일밤 당일 발송명단이 올라올 때까지 희망고문을 당하다 명단에 자기 이름이 없으면 또다시 내일을 기약하는 시련을 겪게 됐다.
게다가 위에도 언급했지만 타락버전을 먼저 발송한 후 일반버전을 발송할 계획이라 했으니 나 같은 일반버전 구매자는 도통 언제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
더 황당했던 건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도 판매자 개인 스케줄이 있는 날은 볼일 본다고 발송을 거르기도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장장 10개월을 기다렸는데 본인 혼자 소화가 힘들면 알바를 쓰던지 하다못해 가족을 동원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물량을 발송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내 수공업도 아니고 고작 하루에 10~20개씩 보낼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무리 소규모 업체라고 해도 회사 차리고 회사 이름 내걸고 장사를 하는 이상 상식적인 부분이 있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 전혀 그러하질 못했다.
구매자들이 1인 업체로 혼자 물건 다 포장하고 보내는지 알 수 도 없을뿐더러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 하나 문제가 되었던 것이 바로 발송 순서인데 이런 속 터지는 상황에서 발송 순서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이에 대한 공식적인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프리오더 초기에 구매한 사람보다 훨씬 늦게 구매한 사람이 먼저 제품을 받는 등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주문순서별로 발송되어야 할 것이 그냥 랜덤 하게 발송된 것.
발송 순서에 대한 명확한 공지가 없어 발송 순서 기준을 알려달라는 사람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자 뒤늦게 랜덤이라고 밝혔다.
이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물건 받는 당사자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이 부분은 업체(판매자)가 백번 잘못했다.
2015.05말 - 수령
약 10개월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태권브이가 내 손에 도착했다.







또 하나 마음에 안 들었던 건 파란색의 도색 컬러인데 분명 공식 제품 사진에서는 진한 파란색이던 것이 내가 받은 물건은 훨씬 밝고 녹색이 섞인 구린 파란색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모니터에 따라 실제색과 달라 보일 수 있다고 해도 저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냥 아예 다른 컬러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
싼 티 나는 저 색깔이 정말 촌스럽고 마음에 안 들었다.
거기다 추가로 가슴 V자에 검은색 점까지 하나 찍혀 있었으니.. 다른 부위면 그러려니 넘어가겠지만 포인트인 가슴 V자에 도색 미스는 도저히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쯤 되니 진짜 짜증이 났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며 10개월 만에 받은 제품이 이런 불량품이라는 게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연기할 때마다 완성도를 더 높이고 더 꼼꼼하게 검수하겠다더니 어찌 이런 결과가?
이건 판매자가 제품 관절들의 기본적인 가동 테스트도 안 하고 그냥 보냈다는 얘기가 되므로 믿고 기다린 데에 대한 실망감은 더 컸다.
사전에 가동 테스트만 했더라면 최소한 이런 발목 고자는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물론 하나라도 더 빨리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 제대로 테스트를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불량률이 높아지고 그만큼 구매자들의 평가도 낮아지며 AS 처리량 또한 늘어나므로 결과적으로 판매업체의 손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실제로 나와 비슷한 관절 불량인 제품을 받은 사람들도 많이 발생했다.
사실 이때 그냥 다 때려치우고 환불받고 치워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10개월의 인고를 다시 되새기며 교환절차에 들어갔다.
교환
내 교환 요구는 이러했다.
'발목을 비롯한 모든 관절이 멀쩡한 것', '팔뚝 파란색이 공식사진처럼 최대한 진한 것', '가슴 V자 등 주요 부위에 도색미스가 없는 것'
몇 차례 어필해 확실히 사전 체크 후 보내주겠다고 대답을 받았다.
이제 불량품을 택배로 보내줘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제품에 하자가 있을 경우 교환 왕복 택배비를 판매자가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착불로 보내려다가 지금까지 상식적이지 않은 경우들이 있었기에 혹시 몰라 질문을 남겼다. 택배비 처리는 어떻게 되냐고.(AS규정 등 관련 공지도 없었다)
바쁜지 답변이 늦어지길래 편의점 택배 수거 시간이 끝나기 전에 보내려고 나가서 착불로 보내고 들어왔더니 답변이 달려있었다. 택배비 선불이라고..
또 한 번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초기 불량이어도 교환 시 택배비는 구매자 부담이라니. 그럼 교환받은 게 또 불량이면 또 택배비 내고 보내야 된다는 얘기인가?
이건 정말 문제가 있는 부분으로 법적으로 따지고 들 수도 있는 거지만 다들 지친 건지 판매자의 사정을 이해해 주는 건지 크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AS 관련 규정은 빠른 시일 내에 확실히 명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힐일이 없다.






발바닥에 납 등을 내장해 무게중심을 잡아줄 수 있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슈로초 제품인데 태권브이가 좀 더 키가 크고 길쭉한 모양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