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즐겼던 창세기전이나 영걸전 시리즈 이후로 SRPG는 슈퍼로봇대전 말고는 거의 해본 적도 없고 별로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작년에 출시된 유니콘 오버로드가 매우 잘 나왔고 엄청 재밌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렸고, 호기심에 5시간 제한이 있는 체험판을 설치해 봤다.
그 결과는? 체험판 시간이 채 끝나기 전에 구입해서 73시간 동안 즐겁게 플레이했다.
SRPG는 아니지만 비슷한 2D 감성에 마찬가지로 준수한 평가를 받은 옥토패스 트래블러 2나 백영웅전은 중도하차한 내가 유니콘 오버로드는 끝까지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몇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클래식한 JRPG 특유의 랜덤 인카운터 때문인 것 같다.
난 JRPG의 랜덤 인카운터를 정말 싫어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적과의 전투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몇 발자국 걸을 때마다 발생하는 건 불합리하고 짜증만 유발한다.
유니콘 오버로드도 필드맵 상에 랜덤 인카운터와 비슷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적들이 보이기 때문에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중요한 건 이런 의도적인 전투를 통해 레벨 노가다를 하지 않아도 메인/서브 퀘스트만으로도 진행에 문제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난이도가 너무 쉬운 게 문제인데 4가지 난이도 중 두 번째로 높은 택틱컬 기준으로 클래스의 상성만 조금 신경 쓰면 세밀한 작전 세팅이나 레벨 노가다 없이도 전투가 매우 쉬워서 후반부엔 다소 루즈해지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그래픽인데 난 도트 스타일의 그래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니콘 오버로드도 필드 및 전투 맵에서는 2D 도트 감성과 비슷하지만 스토리 컷신과 전투 연출에서는 애니메이션풍의 미려한 2D 그래픽과 부드러운 모션을 자랑한다.
스토리는 다소 진부하다고 할 수 있는 판타지 왕도물이지만 땅따먹기 형태로 진행되는 SRPG인 본작에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동료로 삼을 수 있는 네임드 캐릭터가 70명이나 되는데 비해 개성 있고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몇 안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JRPG가 아닌 SRPG 특성상 부대 구성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들이 대다수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친밀도 대화 같은 시스템을 통해 조금이라도 각 캐릭터들마다 나름의 배경 스토리와 주인공과의 서사를 부여하려고 노력한 점은 오히려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다.
유니콘 오버로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지 수십 년 된 마이너 한 장르의 게임이지만 잘 만들면 여전히 통한다는 걸 증명했다.
만약 후속작이 나온다면 꼭 플레이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