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6일 디아블로 4(이하 디아4)의 출시일부터 3일 간 연차까지 써가며 초중반까지는 꽤 즐겁게 플레이했다.
하지만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오픈 월드 디자인과 개수만 많을 뿐 개성 없고 지루한 던전, 핵 앤 슬래시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답답한 템포, 불편하고 제한적인 스킬 시스템, 난잡한 아이템 스탯, 그럴듯하게 시작해 어이없게 끝나는 스토리, 없다시피 한 연출 등 가면 갈수록 실망스러운 부분들만 보여 결국 플레이 타임 100시간을 조금 넘기고 그만뒀다.
웃긴 건 느긋하게 진행하긴 했지만 플레이 타임 100시간이 넘도록 만렙(100)을 못 찍었다는 거다.
디아블로 시리즈를 포함한 핵 앤 슬래시 게임의 특징이자 핵심 재미 요소는 빠르게 만렙을 달성한 후 자유로운 반복 플레이를 통해 아이템 파밍을 하는 건데 디아4는 레벨 노가다를 엔드 콘텐츠로 만들어 버렸다.
얼마 후 시즌1이 업데이트 됐지만 파밍 시작하기도 전에 100시간 동안 레벨링만 하다 질린 와중에 다시 1레벨부터 시즌 캐릭터를 키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접었던 디아4의 시즌4가 지난 5월 시작됐고 상당히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1년 만에 다시 들어가 보게 되었다.
그 결과 시즌4만 100시간 더 플레이하면서 프리 시즌 때 만렙 못 찍었던 드루이드를 스탠다드 서버에서 만렙 찍고 새로 시즌 캐릭터로 만든 야만용사까지 만렙을 찍으며 재미있게 즐겼다.
옵션 및 위상, 담금질, 명품화 등 아이템 시스템의 개선과 나락 같은 엔드 콘텐츠의 추가 등 여러 가지 개선된 부분들이 있지만 내 기준에서는 지옥물결에서 레벨링 하는 과정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저 몬스터들이 예전보다 많이 쏟아져 나올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핵 앤 슬래시 본연의 시원시원한 사냥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훨씬 빨라진 레벨링과 (비록 쓰레기들뿐이지만) 몬스터만큼 쏟아져 나오는 전설템으로 인해 전투+레벨링+루팅의 재미가 잘 맞물려있다.
하지만 이런 개선에도 불구하고 디아4의 근본이 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존재한다.
지옥물결이 열리는 구역 외에는 갈 이유 없는 버려진 오픈 월드와 와우에서 따온 난이도 올리며 도는 MMORPG 식 던전 뺑뺑이, 아이템 강화를 위한 반복적인 재료 파밍이 주는 지루함이 재미에 비해 너무 크다.
난 여전히 디아4에 어설프게 MMO 요소를 도입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활발한 거래나 파티 등 게임 내 커뮤니티 요소가 전무한 수준인데 마을에서 다른 캐릭터들이 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발진은 디아블로 2 시절의 어둡고 황폐한 분위기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한자 닉네임 캐릭터들 수십 명이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마을에서는 디아블로 2의 을씨년스러움을 느낄 수 없다.
이제 곧 시즌5가 시작되고 10월에는 확장팩도 출시되지만 원하던 팔라딘 대신 혼령사라는 신규 캐릭터를 내놓는 것도 그렇고 위에 언급한 디아4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바뀌지 않는 한 구입할 계획은 없다.